May 12, 2024
오늘은 좀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이번에 만난 두 사람이 무려 4년 동안 설탭으로 수학 과외를 했고 그만큼 쌓아 올린 서사가 많기 때문인데요. 바로 서울대 박나현 선생님과 지난해 수능을 치르고 올해 대학에 입학한 부샛별 학생의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이 실제로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인터뷰 내내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자매처럼, 때로는 멘토와 멘티처럼 매우 가까워 보이는 모습에서 이들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중3이었던 학생이 이제 대학에 입학하고, 대학 새내기였던 선생님이 대학 졸업을 할 때까지, 함께 수업하며 채운 시간만큼 둘 만의 에피소드가 수없이 많기 때문이죠.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눈만 마주쳐도 웃음이 터져 나오던 두 사람의 긴 여정, 그 과정에 담겨있는 따뜻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Episode 1.
중3부터 고3까지,
대학 입학부터 졸업까지
안녕하세요. 두 분, 함께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먼저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나현 쌤: 안녕하세요. 서울대학교 식물생산과학부 20학번 박나현입니다. 2020년 11월 말 시작해 2024년 2월 현재는 3명의 설탭 학생에게 수학 과목을 가르치고 있어요.
샛별: 안녕하세요. 저는 제주도에 살고 있는 부샛별이에요. 중3 12월부터 설탭을 시작해서 지난해 수능을 보기 직전까지 4년 간 나현 쌤에게 쭉 수학을 배웠어요. 현재는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습니다.
엉뚱 발랄 샛별이 덕분에 정착할 수 있던 설탭 과외
고등학교와 대학교, 각자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를 서로와 함께 보낸 거나 다름없네요. 한 학생과 선생님이 함께 3년 이상 과외를 한 경우도 드물어요. 두 분이 특별한 케이스인 가장 큰 이유기도 하죠. 4년 전을 돌이켜 볼 때 각자 어떤 시기였는지, 그리고 서로는 어땠었는지 궁금해요.
나현 쌤: 학생들 앞에선 프로페셔널한 척했지만 학생을 가르친 건 설탭이 처음이라 햇병아리 튜터였어요. 당시 고등학생 과외만 희망했어서 중3이던 샛별이가 가장 어린 학생이었죠. 워낙 밝은 친구였고 언제나 편안한 분위기로 수업할 수 있게 해 줘서 이후 저의 과외 스타일이라든지 과외할 때 말투도 샛별이 덕에 정착을 할 수 있던 것 같아요.
저는 딱딱하게 수업하는 선생님이 되고 싶지 않았거든요. 수업할 때 오답에 대해 얘기하면 주눅이 들 수도 있을 텐데 샛별이가 늘 긍정적인 태도로 잘 받아들여줘서 편안하게 수업하는 노하우를 체득할 수 있었어요.
특히 샛별이에게 고마웠던 건, 이전엔 어떤 개념에 대해 ‘이게 궁금할 수 있구나’라는 걸 몰랐거든요. 왜냐면 제가 공부할 땐 궁금한 적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첫 수업부터 어색한 거 하나 없이 ‘이거 왜 그래요?’, ‘쌤, 이건 이렇지 않아요?’라고 물어봐서 그동안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지점들을 생각하게 해 줬어요.

샛별: 저는 어릴 때부터 수학을 잘하는 편이 아니었어요. 궁금한 게 생기면 절대 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편인데, 당시 학원의 진도나 수업량이 저와 맞지 않다고 느꼈죠. 학원이 집에서 멀기도 해서 고민하던 중 설탭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처음 만난 쌤이 나현 쌤이에요. 저는 공부할 때 궁금증이 정말 많은 편인데요. 그동안은 예를 들어 영어 문제를 풀다가 지문 내용에 대해 궁금한 게 생겨서 질문하면 ‘그건 중요하지 않아, 해석하는 게 더 중요해’라는 말을 들었어요
그런데 나현 쌤은 제가 파스칼의 정의에서 ‘파스칼이 사람이에요? 이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이에요? 이걸 왜 만들었대요?’ 이런 걸 물어보면 같이 고민해 주고 대답해 주셨었어요. 이런 쌤은 처음이었죠. 쌤 덕분에 수학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즐겁게 공부할 수 있었어요.

나현 쌤: 잊고 있었는데 그때 괴로웠던 게 생각났어요(웃음). 파스칼의 삼각형, 하키스틱 공식이라는 게 있거든요. 그냥 생긴 모양이 하키스틱 모양이라서 하키스틱 공식인데 샛별이가 자꾸 ‘하키스틱 이렇게 안 생겼잖아요’라고 하는 거예요.
샛별: 그게 아니라요. 하키스틱을 보면 끝부분이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반대로 생겼거든요. 학교에서 플로어볼을 해서 그 스틱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어요. 그래서 ‘쌤, 이건 아무리 봐도 하키스틱이라고 할 수 없어요’ 하면서 쌤을 당황시킨 적이 있죠. 처음엔 쌤도 ‘하키스틱 이렇게 생긴 거 맞아~’라고 하다가 제가 ‘아니에요. 쌤. 하키스틱은 위로 올라가요’하니까 쌤도 ‘어 그러네! 이게 왜 하키스틱인거지..?’ 했던 기억이 나요(웃음).
나현 쌤: 이 질문을 종식시키고 싶던 이유가 있어요. 샛별이가 응용력은 좋은데 암기력 자체가 뛰어난 친구는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이 그림을 통해 정확히 외울 수 있도록 어떻게든 설득해보려고 했는데… 실패했죠(웃음).

서로가 너무 신기했던 두 사람
두 분이 정말 다른 성향인 것 같으면서도 긴 시간 함께 한 만큼 마음이 잘 맞는다는 게 느껴져요. 수업할 때 이런 부분이 느껴졌나요?
샛별: 저는 항상 쌤이 진짜 신기했던 게, 모두가 아는 유행어나 밈이 있잖아요. 근데 쌤이 아무것도 모르는 거예요. 자꾸 저보고 제주도에서만 쓰는 거 아니냐는 거예요. 그러면 제가 ‘무슨 소리예요 쌤~’이라고 하고(웃음). 그런 쌤이 너무 신기하고 궁금해서 ‘쌤은 쉬실 때 뭐 하세요?’, TV 안 보세요?’, ‘아이돌은 누구 좋아하세요?’라고 물어보면 좋아하는 게 하나 있는데, 쌤은 ‘정조’를 좋아하신대요. 그때가 가장 충격이었어요. 무언가를 마니악하게 좋아하는 사람은 많이 봤지만 콕 집어서 역사 인물, 그중에서도 정조를 좋아한다고 하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정말 유행을 하나도 모르시는 게 신기했어요.
해명을 좀 해주세요.
나현 쌤: 모르는 게 맞아요. 마니악하게 그 인물을 좋아하고 존경해 왔기 때문에 전적으로 할 말이 없습니다.
쌤은 샛별 학생에게서 찾은 ‘특별한 점’이 있었나요?
나현 쌤: 고3인데 이렇게 밝은 친구는 처음 봤어요. 샛별이가 중3 때 처음 만났으니까 고3이 되어서도 늘 가장 어리다는 느낌이 있었는데요. 그만큼 긍정적인 에너지가 있었고 덕분에 저도 좋은 기운을 많이 받았어요.
Episode 2.
쌤 덕분에 완주할 수 있던
‘수학’이라는 마라톤
샛별 학생은 수학이 어려웠다고 했잖아요. 그럼에도 수능 전날까지 나현 쌤과 수학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들었어요. 어떤 상황이었는지 궁금해요.
샛별: 수학을 못해서 문과로 왔고, 제 주변에도 대부분이 수학을 포기하고 문과로 온 친구가 대부분이었어요. ‘문과는 취업이 힘들다’는데도 불구하고 수학의 벽을 넘지 못해 문과로 온 친구가 대다수였죠. 특히 고3 때는 아예 수학을 포기한 친구들이 많았어요. 최저 등급 맞춘다는 생각으로 수학 대신 다른 과목 최저를 맞추겠다는 생각들이니까요.
저도 처음엔 설탭으로 수학을 가볍게 시작했어요. 원래도 흥미 있던 과목이 아니거든요. 그냥 ‘수능 때까지 최선을 다하기만 하자’였어요. 실제로 등급이 엄청 잘 나왔다고 할 순 없지만 그래도 그 어려웠던 수학을 수능 전날까지 놓지 않고 열심히 했다는 것에 큰 의의가 있어요.

어떻게든 숙제만큼은 다 해온 존경스러운 학생
수학 공부량이 꽤 많았던 걸로 알고 있어요. 학생이 힘들어하지는 않았나요?
나현 쌤: 수업 분량도 많았고 공부할 것도 많아서 샛별이가 힘들었을 텐데 늘 열심히 해줬어요. 상위권 친구들은 문제가 쉽게 풀리니까 오히려 공부하는 게 재밌을 수도 있거든요. 문제를 많이 풀면 풀수록 유형을 체득하게 되니까 더 어려운 문제를 빨리 풀 수 있게 되죠. 그런데 샛별이는 항상 어려운 숙제를 다 시도해 왔어요. 그게 너무 기특하고 대견하고 한편으로는 존경스럽기까지 한 거예요. 그 열정에 꼭 보답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항상 우러나와서 더 열심히 수업할 수 있던 것 같아요. 민망해서 말은 못 했지만.

샛별이가 수학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수학. 언제 반응이 오던가요?
나현 쌤: 저는 수학이 계단식 공부라고 생각해요. 오르막길처럼 차근차근 올라가는 게 아니라 계속 쭉 정체하다가 갑자기 확 도약하고, 다시 또 정체하다가 갑자기 유레카, 깨달음을 얻는 과목이죠. 샛별이가 놀랍게도 굉장히 정직한 친구라 처음엔 한 번 풀었던 문제를 숫자도 안 바꾸고 똑같이 내도 풀었던 건지 안 풀었던 건지 기억을 못 했어요(웃음). 분명 같이 푼 문제인데 항상 새롭게 받아들이더라고요.
샛별: 숙제로 푸는 문제가 워낙 많았으니까 오답량도 많았어요. 그런데 저는 틀렸던 걸 또 틀리는 경우가 많았죠. 쌤이 ‘이걸 또 틀렸다고?’ 이러면 저는 ‘제가 이걸 풀었던 게 맞아요? 다른 친구랑 헷갈리신 거 아녜요?’라고 뻔뻔하게 대답하곤 했어요(웃음).
나현 쌤: 근데 확실히 처음 풀었을 때보다 두 번째가 나았고, 두 번째보다 세 번째가 나았어요. 아마 샛별이가 수학 숙제로 되게 힘들었을 거예요. 양 자체도 많았고, 그날 오답 풀이를 다 못하면 다음 주로 넘기지 않고 그 주에 끝내려고 최대한 몰아붙였거든요.
수능을 앞두고 10월 말부터 11월 수능 전날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수학 공부를 시켰는데 그 연속된 날 중에 저는 샛별이가 계단식으로 실력이 올라가고 있는 게 보이더라고요.

쌤 눈에 그게 보였다니 그때 정말 학생이 대견했겠어요. 샛별 학생도 스스로 수학 실력이 늘고 있다는 게 느껴졌나요?
샛별: 네. 수능을 두 달 앞두고는 새벽 4시 반에 첫차를 타고 학교 자습실에 갔어요. 경비 아저씨보다 먼저 학교에 도착했죠. 가자마자 국어 풀고, 나머지는 수학을 푸는 생활을 두 달 정도 했어요. 그때 국어랑 영어는 내가 여기서 뭘 더 한다고 해서 크게 바뀌지 않을 것 같은 거예요. 항상 비슷한 등급이 나왔으니 ‘수능 날 운이 좋으면 좀 더 나오겠지’라는 생각이라 수학 외에 다른 과목은 매일 정해둔 문제만 계속 풀기로 했어요. 결국 수학은 수능날 성적이 제일 좋았어요.
설탭 수업 외에 개인적으로도 수학 공부를 열심히 했네요.
샛별: 그렇죠. 이과 친구들 붙잡아서 질문도 많이 했어요.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고 미적분 준비하는 친구한테 확통 들고 가서 물어보기도 하고요. 친구들한테 배워서 혼자 풀어보고 또 안 풀리면 들고 가서 또 물어보고요. ‘오늘 끝내야 하는 숙제는 무조건 오늘 끝낸다’는 생각이었어요.
마지막 수업 얘기도 해주세요. 수능 바로 전날까지 4년이나 함께 수업을 했으니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아요.
샛별: 맞아요. 수능 전날 마지막 수업이었는데 내일이면 끝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이상하긴 하더라고요. 다른 학원 쌤들은 찾아가서 보면 되는데 나현 쌤은 이제 쉽게 만나기 힘들잖아요. 아 이제 진짜 끝인가, 내일 끝나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현 쌤: 수능 전날 저도 긴장을 많이 했어요. 제 수능도 그렇게 긴장 안 했거든요. 제가 수능 못 치면 그냥 제 탓인데, 샛별이가 수능 수학 못 보면 내 탓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떻게든 직전까지 하나라도 더 집어넣어 주고 싶다는 생각과 당장 내일 컨디션 조절을 해야 하니 무작정 수업만 할 수 없다는 생각 사이에서 계속 갈등했던 기억이 나요.
Episode 3.
입시 과정의 든든한 조력자,
쌤 덕분에 확신을 얻을 수 있었어요!
샛별 학생은 일찌감치 수시를 포기하고 정시로 전향한 걸로 알고 있어요. 그 과정에서 쌤과 진로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눴을 것 같아요.
샛별: 1학년 1학기 성적표 받은 날 바로 정시에 집중하기로 결정했어요. 당시 모의고사 점수가 좋기도 했고 내신 성적이나 학교 상황을 고려했을 때 정시가 제게 유리할 거라고 판단했거든요. 그 과정에서도 쌤이랑 수업하면서 진로 상담이나 학업 얘기도 많이 나눴어요.
나현 쌤: 사실 솔직히 제 경험이 샛별이한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거예요. 저는 수시를 준비했던 케이스고 샛별이는 일찌감치 정시에 집중하기로 결정했으니까요. 그래서 주변 대학 동기들뿐만 아니라 다른 대학에 간 고등학교와 중학교 친구들에게도 ‘너 정시 준비했을 때 어땠어? 불안하지 않았어?’라고 물어보고 그 친구들의 대학 동기한테도 물어봐달라고 했어요. 그것들 중 정제하고 정제해서 좋은 이야기만 해주려고 했죠.

샛별 학생을 위해 주변 지인들을 총 동원하신 거네요. 보통 애정이 아니고선 그렇게 까지 하기 힘들죠. 그렇다면 샛별 학생에게 들려준 ‘정제된 좋은 이야기’는 무엇이었나요?
나현 쌤: 정시 결정했으면 수시 쪽은 뒤도 돌아보지 말라고요. 그리고 수학이 힘들어서 문과에 간 친구들 중 ‘수학 못하는 거 인정하고 이과에 갈 걸’하면서 후회하는 친구들이 많은데요. 샛별이는 문과 선택이 도피처는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네가 문과가 좋아서 문과에 간 거였으면 좋겠다, 그러니 수학도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하자’는 얘길 해줬어요.
샛별: ‘네가 결정한 게 맞는 거야’라고 저의 결정을 늘 응원하고 지지해 주시면서 진짜 좋은 말 많이 해주셨어요. 덕분에 ‘내가 아예 틀린 길을 가려는 건 아니구나’라고 확신이 생기기도 했죠.
나현 쌤: 그 확신을 주고 싶었어(웃음). 왜냐하면 저는 수시를 준비했지만 수능 성적이 좋았어서 ‘수시를 선택한 게 내 길이 맞았을까’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거든요. 제 입장에서는 제일 원하는 학교와 학과에 들어간 거라 후회라는 걸 할 수 없었는데도 지난 시간에 대해 후회를 했던 거예요. 수능 성적이 이렇게 좋을 줄 알았으면 수시를 3년 내내 그렇게 치열하게 챙기지 않았겠지, 조금 더 교우 관계를 넓게 다지고, 선생님들과도 더 편안하게 지냈겠지라는 후회가 있었어요. 한 번 해보니까 결국 후회는 언제나 하게 되어있다고 생각해서 샛별이가 선택한 길이 가장 후회 없는 길인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가장 많이 흔들리고 불안한 시기였을텐데 쌤이 그렇게 조언해 주셔서 샛별 학생이 더 단단하게 마음 잡고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네요.
나현 쌤: 왜냐하면 이 아이가 제가 뜯어말린다고 해서 뜯어말려지지 않을 친구라는 걸 알았거든요(웃음). 사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는데(웃음) 그럼에도 ‘샛별아, 너 선택이 맞아’라고 해주고 친구들에게도 물어 물어서 같은 경우 좋은 결과가 있던 친구가 있는지를 계속 검증했어요.
마음이라도 편할 수 있게 ‘네 선택이 맞다, 요즘 그렇게 많이 한다더라’ 하면서 제가 들은 후기 중 긍정 이야기만 해주려고 했어요. 샛별이가 이미 결정했는데 제가 반대 방향의 얘길 하면 결정해 놓고도 후회나 고민할 수 있으니까, 그런 시간 자체가 없었으면 했어요.
비록 수능은 못 봤지만 입시는 성공했어요
그렇게 치열하게 정시를 준비했는데 결국 수시로 대학에 합격했어요. 어찌 된 일인가요?
샛별: 수능만 보고 2년 반을 달렸는데 하필 국어에서 시간이 부족해 마킹을 다 못했어요. 1교시 끝나고 쉬는 시간에 별의별 생각을 다 했어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뭐지? 이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해야 하나? 중도 포기 각서 쓰고 나갈까?라는 생각까지 했는데 ‘지금 집에 가면 엄마가 얼마나 놀랄까’라는 생각에 일단 끝까지 봤어요. 근데 끝까지 보길 잘했죠. 그 덕분에 수시 최저를 맞출 수 있었으니까요.
최종 합격한 제주대 국어국문과 수시는 우주상향이었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그런 결정을 했던 거예요?
샛별: 원래 국어교육이나 국어국문과에 가고 싶었어요. 제주대는 학교 담임 쌤 추천으로 지원했죠. 일반 교과로 지원했고 운이 좋아서 추가로 합격을 했고요. 자다가 깨서 합격 소식을 들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지’란 생각에 어안이 벙벙했어요. 바로 나현 쌤한테 제주대 추가 합격했다고 말씀드렸죠.

나현 쌤: 저도 어안이 벙벙했어요. 혹시 샛별이가 나한테 말 안한 게 있었나? 하면서요. 처음 소식을 듣고 그 자체에 너무 놀라서 대박이다, 축하한다고 얘기했어요. 그때 가족들과 있었는데 너무 신나서 부모님과 오빠한테 자랑했어요. 오래 수업했으니까 가족들도 샛별이를 알거든요. 그랬더니 부모님이 ‘샛별이? 대학 입학 축하한다’고 하셨어요.
샛별이가 원래 국어를 엄청 잘하는 친구였거든요. 그래서 정시에서도 나머지 영어, 수학이나 사탐이 혹시 미끄러지더라도 국어가 뒷받침해 줄 수 있겠다 할 정도로 국어를 좋아하고 잘했어요. 그래서 국어국문학과에 합격한 것도 너무 잘 됐다고 생각했고, 제주도민이니까 제주대에 들어가게 된 것도 참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소중한 사이가 되다니! 정말 값진 4년이었어요.
두 분의 애정이 정말 남다른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한 마디씩 부탁드려요.
나현 쌤: 과외 수업이 끝인 줄은 알고 있었는데 끝내기가 싫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질척이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11월 말에 샛별이 생일에 맞춰 생일 선물을 보냈어요. 생일 축하한다고 보내는 김에 하고 싶은 말을 쭉 쓰는데 할 말이 너무 많은 거예요(웃음). 그게 또 잔소리가 될 것 같아서 쓰고 지우길 반복하다가 보냈어요.
과외는 끝났어도 영영 이별은 아닌 거니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진 않아요. 샛별이는 지금도 너무 잘 살고 있어서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달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무언갈 결정했으면 뒤를 돌아보지 않고 남과 비교도 안 하는 게 멋지고 행복한 인생이라는 걸 샛별이를 통해 배울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저한테도 샛별이와의 설탭 과외는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샛별: 이 목걸이가 선생님이 생일 선물로 주신 목걸이예요. 결과랑 상관없이 빛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하셨어요. 수능 앞두고는 거의 매일 수학 공부를 하며 힘든 시간을 같이 보내서 더 친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수능 끝나고는 학교 마치고 집에 가는데 정말 자연스럽게 ‘집에 가서 수학 문제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수능이 끝났는데!
그래서 ‘아 진짜 쌤이랑 오래 봤고 수학 공부를 열심히 했구나’ 느꼈어요. 제가 오답이 너무 많으니까 중요한 것들만 풀고 넘어가자고 할 수 있었을 텐데 저를 포기하지 않은 쌤 덕분에 그 많은 수학 문제도 풀어보고 무사히 수능을 볼 수 있었어요. 저와 함께 소중한 시간을 보내 주신 나현 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나현 쌤과 샛별 학생이 설탭에 보내주신 사연

마지막 이야기를 나누며 두 사람은 함께 눈물을 보였어요. 둘 만이 느낄 수 있는 유대감과 존중, 존경, 애틋함… 그런 감정들이 대화하는 내내 깊이 느껴졌습니다.
수학을 어렵다고만 생각하던 학생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선생님을 만나 어려움을 극복하고, 인생의 중요한 지점들을 무사히 넘을 수 있었어요.
또한 선생님은 자신이 학창 시절엔 느낄 수 없던 유대감을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을 통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이는 어리지만 자신의 결정에 후회하지 않고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 단단한 마인드를 학생에게서 배웠다고도 했죠.
수학 공부를 하려고 만났는데 생각지도 못한 인연과 값진 깨달음을 얻은 나현 쌤과 샛별 학생. 설탭을 통해 귀한 인연이 되어주고 그 소중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또 사회에서, 대학 입학과 함께 시작될 두 분의 새로운 출발과 계속해서 이어나갈 둘 만의 서사를 응원하겠습니다!




